살아가는 중

2014년 2월 27일에 대해

지렝이 2014. 2. 28. 13:17




아침 일찍 일어나 (며칠 늦게까지 술을 먹느라) 피곤했던 몸을 추스려 씻고, 몇가지 준비물을 챙겨서 1시간 30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동안 시간의 구멍이 생기지 않을지, 나의 허점이 드러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아침 지하철을 탔다. 전날 지갑을 잃어버린턱에 1회용 버스카드를 발급받느라 빠른 지하철을 놓치는 등 몇가지 (도시생활자의 생활양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불이익들이 있었다. 

 분단위로 급한 시간이었다. 지도검색으로 역 근처 화방을 찾아 지난 밤 난데없이 지갑이 없어 결재를 못했던 간단한 준비물들을 샀다. 다행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스펙타클하게 지나가기때문에 무료하거나 안가는 초침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단지 몇몇아이들의 부정적 피드백은 걱정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면 살아가면서 손해를 많이 볼 것인데.

 일이 끝나자마자 종로로 갔다. 어느때부터인가 밤에 잠을 잘 안자면 허리가 많이 아픈데, 미묘한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쓰지않겠다고 맹세한 통장에서 또 돈을 찾아쓸 수밖에 없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는동안 그 사람이 마실것까지 주문해놓았다. 꽤 먼 사람의 음료취향까지 추측할수있는 내 눈썰미, 주워담기 스킬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1시간동안 경계하다가, 한번 말의 물꼬를 트자 내 격양된 목소리가 쉴새없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내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었지만, 이 말을 다른쪽에서 기억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을것이다. 그것을 알기때문에. 

요즘엔 투명한 판단이라는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에서 노정되는 방향이 수많은 근거들을 모두 무력화시킨다. 판단이란 결과에 맞춰진 것일 뿐, 그래서 본디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는데 누군가의 설득 혹은 반작용에 의해 그 원칙을 선회하는것은 엄청난 일이고, 살며 몇번 없는 일일 듯 싶다.

큰 일이 있었던 날이지만,

그로부터 온 회신은 읽어보지 못했다. 훑어내리며 몇가지 단어들만 겨우 인지했을 뿐. 아직 , 조목조목 이해하며 읽지 못했다. 아마 계속 안읽을 것 같다.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니까. 6년전쯤 c로부터 왔던 메일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달라질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난 그 메일을 생각하며 왈칵 울곤 했었다는걸 얼마전에 전 블로그를 읽으며 알았다.

아마 앞으로도, 지금 현재의 이 감정들은 수없이 복기될 것이다. 잊고싶지 않아서, 내 친구들이 어렵사리 암호처럼 써 놓은 페이스북의 글들을 긁어모아 보관해 두었다.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는걸 보니 허무함은 좀 덜어졌다. 


1주일전까지만 해도 분노하며 페이스북에라도 똥을 싸지르겟다고 다짐했지만, 모두가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격하게 뛰어오르던 심장도 이젠 차분히, 감정도 무화되었다. 25일 시청에서, 날 보자마자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자 허탈감뿐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시시한거다. 


이제 끝이났다. 새로운 시작일지는 모르겠다.


+


옆지기에게 크게 면박을 주었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인관계라도 그가 객체임을 잊지말아야 하고 그에대한 객관적 거리를 계속 가져야한다. 남들에게 설명하듯이 그에게도 설명하고 남들에게 친절한것보다 더 그에게 친절해야한다. 내가 어렸다.

(맨날 내가 사과하는것 같아서 오기가 났다. 그래도 성질급한 내가 해야겠지..)



당분간은 조용히 살고싶다.